안양시 동별지명유래 동안구3 소개
안녕하세요.
안양호빠입니다.
오늘은 안양호빠와 함께 안양구 관양1동의 동편, 말무덤이, 망령골 지명유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안양시 동별지명유래 동안구3
관양 1동
동편(東便)
샌말(間村) 동쪽에 자리잡은 마을로, 이 곳에 최초로 세거한 성씨는 조선중기에 전주 이씨 익양군파인데,
현재(1991) 동편의 57가구 중 30여 가구가 전주 이씨일만큼 전주 이씨가 크게 번성했다.
후손 중에 이면훈(李冕薰,작 고, 전매청장 역임), 이서구(李書九1923 .대림콘크리트 상임고문)가 있다.
관양1동 28통에 속한 동편마을은 서남지역을 아랫말, 동북지역을 웃말이라 각각 칭하고 있다.
말무덤이(馬賁洞)
뺌막(秀村)과 가운데말(中村) 사이에 자리잡은 마을로, 조선시대 마장골 (현 매곡동)에서 기르던 말이 죽으면 이곳에
매장했다고 하여, 말무덤이 (馬音洞)이라 부른다고 한다.
일설에는 큰 무덤이 있는 곳이라하여 말 무덤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1960년대만 해도 현 관양중학교 아래에서 말에게 편자했던 쇠 조각 등이 많이 출토되었다는 마을 촌로들의 증언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말의 무덤이 있었던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김해 김씨, 나주 정씨, 위씨 등이 오래 살아온 말무덤이 마을이 오늘날처럼 크게 번창되기는 1978년에 시작된 안양7지구
구획정리 사업을 실시하면서부터 이다.
이후 1982년 현대식 건물이 간간히 신축되다가, 1985년에 이르러 농경지 (논)이었던 곳에 현대아파트가 들어선데 이어,
야산이었던 곳에 아리랑 아파트와 남광 2차아파트가, 밭과 논이었던 곳에 태광아파트가 각각 신축되면서 인구가 급격히
늘었다.
또 밭과 임야였던 관양동 538 일대는 1948년 관양국민학교가 세워졌는데 이는 동안구청 관내에서는 최초의 현대식
교육기관인 동시에, 이 학교 校名으로 인해 1973년 시제가 실시되면서 이 일대를 관양동(冠陽洞)으로 명명 하기까지 하였다.
참고
안양시지 그 후 1977년에는 포도밭이었던 관양동 산 90-3에는 관양중학교가 세워져, 한낱 말의 매장지에 불과했던
불모지가 오늘날에는 교육의 요람지로 크게 탈바꿈 되었다.
마을에서는 뺌말, 가운데말 주민들과 함께 해마다 음력 10월 1일 뺌말 뒤에 있는 산에서 산신제를 지내는 곳이 뺌말
지역이라는 연유로 1960년대 초부터 제를 지내지 않는다.
안양시 동별지명유래 동안구3 망령골(亡靈谷)
망령골 고개주변에 있다.
본래 동편에 속한 마을로 청주 한씨 등의 세거지이며, 민가 7호의 작은 취락이다.
구전에 따르면 신라 말기에 어떤 사람이 서울에서 나무를 팔고 과천을 거쳐 이곳을 지나가는데, 어느 여인이 소복을 하고
나타나 하룻밤을 유숙하며 여인과 관계를 맺었다고 한다.
그 후 그 여인이 다시 나타나 하는말이 관악산 바위 틈에 아이가 있으니 가보시오 라고 한마디 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여인이 일러준대로 현장에 가보니 과연 바위 틈에서 아이가 울고 있어 데려다 정성껏 기르니, 후에 귀주대첩의 영웅 강감찬
장군이라는 것이다.
망령골이란 망령(亡靈), 즉 죽은 사람의 영혼이 나타났다 해서 붙여진 지명인데, 일설에는 어느 여인이 이곳에서 3년간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관악산을 바라보며 기도했다고 하여 망령골(亡靈谷)이라 했다는 것이다.
참고:안양시지
출처 안양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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