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시 동별지명유래 동안구4 소개
안녕하세요.
안양호빠입니다.
오늘은 안양호빠와 함께 안양구 관양1동의 오촌말, 가운데말, 골안 지명유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안양시 동별지명유래 동안구4
오촌말(吳村洞)
샌말 북쪽에 있다.
이곳에 최초로 산 사람은 조선 숙종때 승정원(承政院) 좌승지(左承旨)에 증직된 오익성(吳益瑞자는 龍佰, 호는 三山散人)로
알려지고 있으며, 그 후 그의 후손인 보성 오씨가 세거하면서 취락이 이루어져 오씨의 마을이란 뜻으로 오촌말 이라 칭하고
있다.
마을 뒤에는 그가 생존시에 암각한 삼산동천(三山洞天) 이란 바위가 있다.
가운데말(中村)
조선시대 대궐안의 식사와 왕명(王命)의 전달, 수문(守門) 및 청소를 맡아 보던 곳을 내시부(內侍府)라 칭하고, 이에 종사하는
사람을 내시라 불렀다.
내시는 4품관 이하는 다른 문무관(文武官)과 같이 계급이 올라가고, 3품 이상은 왕의 지시로 올라 갈 만큼 권세가 당당해 사회 신분상 중인에 속했다.
과천 지역의 내시는 인덕원에서 집단을 이루며 살다가 이들이 수(壽)를 다해 죽으면 오늘 날의 공원묘지처럼 내시묘원(內侍墓園)을 조성해 예장을 치뤘다.
가운데말, 즉 중촌(中村)은 내시(中人)가 죽어 묻히는 곳이란 뜻인데, 실제로 최근까지 이 마을 곳곳에 내시 무덤이 있었다가
주변 환경변화로 모두 이장, 또는 화장된 사례가 있다.
즉 효성다세대 주택(관양동 356)에 4기 와, 관양동 산 65-1 속칭 내시땅에도 1기가 있었다가 1970년대 말 내시 후손이 화장
하였다.
마을 주민들이 증언한 바에 따르면 어떤 내시 묘 앞에 있는 묘비명에는 「내시 김공 지묘」라 쓰인 비석도 있었다고 한다.
가운데말은 김해 김씨, 나주 나씨, 평양 조씨, 안동 김씨등의 세거지로,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까지만 해도 20여호 남짓한
촌락이었으나, 1978년 안양 7지구 구획정리사업 때 택지로 변모되면서 남광 1차 아파트(농경지), 동산빌라(안동 김씨 소유),
뉴한신빌라(안동 김씨 소유 임야) 등이 들어섰고, 1973년에는 시제가 실시되면서 관양1동사무소가 들어섰다.
마을에서는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뺌말, 말무덤이 주민들과 함께 해 마다 음력10월 1일 뺌말 뒷산에서 산신제를 지냈다.
안양시 동별지명유래 동안구4 골안(谷內)
뺌말(秀村)에 속했던 마을로 뺌말 서북쪽에 있다.
작은 골짜기 안에 위치한 마을이므로 골안(谷內)이라 칭하며,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민가 3호가 있었다.
그 후 1978년 안양7지구 구획정리사업 때 택지로 조성되어 민가와 연립 주택, 다세대주택 등이 들어섰다.
출처 안양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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