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시 동별지명유래 동안구5 소개
안녕하세요.
안양호빠입니다.
오늘은 안양호빠와 함께 안양구 관양1동의 뺌말, 샌말,소능골, 부림말 지명유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안양시 동별지명유래 동안구5
뺌말(秀村)
말무덤이 서편에 있다.
이곳에 사람이 처음으로 살기 시작한 것은 조선 중기로 알려지고 있다.
경상도 김해에서 과거를 보러왔던 김해 김씨 금영군파(金寧君派)의 유생 한분이 과거를 본 뒤 귀향하다 인덕원 쯤에
이르러 관악산을 바라보니 서북쪽 언덕의 지세가 완만하고 남향으로 살기 좋은 곳임을 간파하고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 후 상주 김씨, 연안 차씨가 세거해 이들 세 성씨를 뺌말의 삼대성씨(三大姓氏) 라 일컫는다.
뺌말(秀村)이란 취락명은, 마을 내에 뺑대쑥(준말로 뺑쑥 이라함)이 많이 자생하고 있어 뺑말이라 했다가, 후대에 내려오면서
지금의 지명으로 불리워 오고 있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10월 2일이면 관악산 줄기 나즈막한 봉우리에 있는 당집에서 마을의 안정을 기원하기 위해 관악산
산신제(冠岳山 山神祭)를 올린다.
산신제에 있어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산신제를 주관할 당주(堂主)를 선정하는 일이다.
당주는 몸가짐이 바르고 집에 상을 당한는 등 부정타지 않은 사람중에서 선정된다.
당주로 선정된 사람은 제를 지날 때까지 바깥 출입을 삼가하고 부정한 일을 저지르지 않으며, 대문앞에 진흙(또는 황토)을
발라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막는다.
예전에는 말무덤이, 가운데말과 함께 지내다가 부림말 등에 교회가 들어서면서 지금은 뺌말 주민들만 지낸다.
참고:안양시지
샌말(間村)
동편과 부림말 사이에 위치한 마을이므로 샌말 (間村)이라 부른다.
전주 이씨, 보성 오씨, 경주 이씨, 광주 이씨의 세거지로 전주 이씨가 대성을 이룬 샌말은 안양일대에서는 오지에 속하며,
인근의 마을이 하나같이 하루가 다르게 급격한 도시화 추세로 변모되어 가고 있으나, 이 마을은 아직도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전형적인 농촌이다.
이곳에는 중종조에 첨지중추부사를 역임한 류계장(柳秀獐1435-1515), 이의준(李義駿 황해도 관찰사), 유영(柳寧1507-1583,
전주판관 역임), 오병선(吳炳善1904-1979, 만안.안양.관양국교장역임)의 묘가 있다.
참고:안양시지
소능골(小陵谷)
본래 샛말에 속했던 마을로, 샛말에 살던 보성 오씨 후손들의 분가로 취락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샛말과 동편 사이에 위치해 있는 소능골은 5 호 남짓한 작은 취락으로 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전형적인 농촌이다.
능골 아래 작은 골짜기에 자리잡은 마을이라 하여 소능골 이라 칭하는데, 이곳에 숙종 때 문종가로 이름이 높았던 吳文瑞의
묘가 있었다가 1985년 충남 조치원으로 천묘하였다.
참고:안양시지
안양시 동별지명유래 동안구5 부림말 (富林洞)
가운데말 동쪽에 위치한 마을로, 남평 문씨와 밀양 박씨가 배판했다.
이곳은 예로부터 산림이 울창했을 뿐만 아니라, 인근의 다른 마을보다 부 자가 많이 산다고하여 부림말 (富林洞)이라 칭한다.
부림말은 비산동- 인덕원간의 도로확장후 대도, 한미, 골드, 남광, 삼광, 원주 등의 연립 및 아파트가 건립되면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7월 1일에 관양우체국 옆에 있던 박우물과 신 장로우물, 부림우물(윗우물)에서 마을의 안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정제(井祭)를 지내다가, 우물 주변에 민가가 건립되면서 샘물이 끊겨 폐정되자, 1988년 부터 제를 지내지
않는다.
참고:안양시지
출처 안양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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