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시 동별지명유래 만안구1

안양시 동별지명유래 만안구1 소개

안녕하세요.
안양호빠입니다.

오늘은 안양호빠와 함께 만안구 안양1동의 남부동, 시대동, 중앙동의 동별유래에 대해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안양시 동별지명유래 만안구1

안양1동

남부동(南部洞)

교하동(안양5동) 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안양시가지 남쪽에 자리잡은 마을이라 하여 남부동(南部洞) 이라 칭한다.

일제강점기만 해도 찬우물(안양5동) 에서 흘러내리는 샘물로 농사를 짓던 전형적인 농촌지역으로, 광복 직후에
벽산쇼핑 앞에 민가 수호가 뜨문뜨문 있었다가, 1960년대에 이르러 원예. 청과 시장이 개설되고,
이어 숙박업이 번성하면서 급성장한 곳이다.

참고:안양시지

시대동 (市垈洞, 舊市場)

중앙동 동쪽으로 한국제지와 진흥아파트 사이에 자리잡은 마을이다.

안양의 중심부인데다가 지리적으로 군포, 의왕, 과천, 광명, 수암, 군자 등이 인접해 있어 시장으로서는 최적지였다.

이곳에 시장이개시( 開市)되기는 1926 년 1월 28일이었고, 거래되는 품목은 농산물을 위시하여 축산물, 포목,
일용잡화까지 다양했다.

개시(開市)한 1년후(1927)의 년간 매출액을 보면 농산물 이 15만 6천원, 잡화가 21만 2천원, 그밖에 직물, 축산물,
수산물 등 모두 50여만원에 달했다.

상인들은 개시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1927년 6 월 4일 단오절을 기해 대대적으로 기념식을 거행키로 했는데,
동아일보 1927년 6월 1일자에 안양시장일주기념(安養市場 一週紀念) 이란 제하에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경기도 시흥군 서이면 안양은 군의 중앙일뿐 아니라, 교통이 편리하고 따라서 산물도 상당함으로 동면에서는
작년중에 안양시장을 설치한 후 유래 성적이 비상히 양호하던 바 더우기 안양번영의 일책으로 오는 6월 4일(단오일)을
기하여 전시장(全市場) 일주년 기념식을 성대히 거행하리라 하며 여흥으로 예기의 가무와 오산청년(烏山靑年)의
소인극(素人劇) 외 안양소년척후대 주최의 축구대회 및 동화동요회 등이 있어서 많은 흥미가 있으리라더라” 1주년
기념식은 예정대로 동년 6월 4일 오후 2시부터 안양시장 내 광장에서 수천의 관객이 참석한 가운대 전대(田代) 발기인
대표의 식사와 조한구 서이면장의 경과보고, 신미(神尾) 시흥군수의 고사, 종문웅(안양금융조합 이사),
조희철(동아일보 시흥지국 기자), 엄기승(안양공보교 기성회장)의 축사에 이어 기녀들의 기무, 소인극등을
공연해 일대 성황을 이루었다.

안양시장측에서는 이후로도 씨름대회.그네대회 등을 개최하여 시장의 번영을 도모하였는데, 일례로 1933년 8월 25일,
8월30일, 9월 4일 등 장날을 기해 안양역 광장에서 안양씨름대회를 개최했고, 같은해 음력 7월 30일 장날부터
추석날까지 매 장날마다 씨름대회를 개최해 1등에 황소1두, 2등에 광목 1필이 상품으로 수여되었다.

그러나 이곳이 저지대로 홍수가 나면 안양천의 범람으로 침수가 되기 일쑤였고, 더우기 1961년 11월 6일 안양4동으로
시장이 이전하자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가, 옛 태평방직 자리에 대단위 아파트(진흥아파트)가 들어서자 번성되기 시작하였다.

1929년에 안양지방에서는 최초로 전기가 송전(送電)된 곳이기도 하다.

시대동(市垈洞) 이란 마을 명칭은 안양시장이 있었다는 연유에 기인한 것이며, 일명 구시장(舊市場) 이라 부르기도 한다.

중앙동(中央洞)

북부동과 시대동(또는 남부동) 사이에 위치한 마을로, 안양시가지 중앙에 있는 마을이므로 중앙동이라 칭하며,
이 마을을 기점으로 남쪽에 있는 마을이 남부동(南部洞), 북쪽에 있는 마을이 북부동(北部洞)이다.

중앙동이 오늘날처럼 안양의 중심지로 크게 번창되기는 조선조 제 22 대 임금인 정조가 1795년에 시흥현과
과천현 경계지점에 만안교를 가설한 후 화산능행의 노정(露程)을 과천-인덕원-수원에서 시흥(현 구로구 시흥 동)-안양-수원의 노정으로 바꾸면서 유래정 뒤(안양1동 674-67)에 안양행궁(安養行官)을 짓자 주변에 민가가 생기기 시작했고,
1905년 1월1일 경부선의 개통과 함께 안양역(安養驛)이 건설되자 교통의 요충지로 발달되어 1917년 7월에 호계 2동에
있던 서이면사무소가 안양1동사무소 옆으로(안양1동 674-271) 이전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안양금융조합과 안양연초조합 등이 속속 이 곳에 세워졌고, 광복후에는 시흥군청을 비롯하여 안양경찰서,
안양읍사무소등 공공기관이 들어서자 관가의 거리로 되었다가, 이들 기관이 1970년대에 다른 곳으로 이전하자
뉴코리아호텔, 안양백화점, 그 밖에 상점과 유흥음식점이 붐벼 안양의 1번가로 자리를 굳혔다.

출처 안양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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