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시 동별지명유래 만안구4

안양시 동별지명유래 만안구4

안녕하세요.
안양호빠입니다.

오늘은 안양호빠와 함께 만안구 안양7동부터 8동까지의 동별유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안양시 동별지명유래 만안구4

안양 7동

덕천마을(德泉洞)

주접동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는 주접동과 한 마을이었다.

이곳에 사람이 처음으로 살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 초에 시흥시 정왕동 출신인 원정상 (안양여고 원종면 선생의 증조부로, 묘가 안양중앙병원 뒤 에 있었다가 1990년 5월에 화성군 매송면으로 이장됨)이 분가를 하면서 지금의 안양7동 213에 정착했고, 이어 전주 이씨, 창령 성씨등이 세거하면서 취락으로 발달되었다.

이곳은 1960년대만 해도 대부분의 지역이 농경지였었다.

예컨대, 명학 역과 주접지하도에 이르는 경부선 철도변은 아카시아 동산이었으며, 안양 냉동사(안양7동 196-15)자리는 농경지(논), 주식회사 삼풍(안양7동 199)자 리는 논과 포도밭, 대영모방주식회사(안양7동 196-12)자리는 잎두밭, 동화 약품공업주식회사(위치, 안양 7동 189)자리는 농장이었다.

이 마을이 오늘날처럼 번창하기 시작한 것은, 토박이 원종만(안양7동 138-32, 1932- . 원정상 증손)의 공로가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원씨는 허허벌판인 이곳에 덕천슈퍼건물을 신축한 후, 7동새마을금고(안양7동 130-27)를 비롯하여 덕천국민학교(안양7동 192-5), 덕천우편 취급소 등의 기관과 유수의 공장을 유치하는데 공헌했다.

이 마을 본래의 이름은 넓은 벌판에 있다고 하여 벌터 (坪村)라 칭했는데, 1977년 7월 대홍수 때 안양천의 범람으로 많은 수재민이 발생하자 수재민촌(水災民村)으로 불리웠고, 이 해 9월에 안양의 시내버스(삼영운수)가 이 곳에 버스노선을 개설하면서 버스 안내판에 수재민촌으로 명기하자, 당 시 이 마을의 새마을지도자였던 최돈세(崔燉世)가 중심이 되어 긴급 주민회의를 개최한 결과 수재민촌 이란 마을명이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장차 2세 교육을 위해서도 바람직스럽지 못하므로 차제에 새로운 마을명을 짓자는 제의가 많아, 큰 하천인 안양천에 위치해 있다고 하여 큰 德 자에 내 川 자를 취해 덕천마을 (德川洞)으로 명명했다가, 안양천의 오염으로 이미 지가 좋지 않다는 여론에 따라 1년만인 이듬 해(1978) 9월에 이곳 어린 이들이 샘솟듯이 씩씩하게 자라서 나라에 큰 일꾼이 되라 는 뜻으로 큰 德 자에 샘 천(泉) 자를 취해 덕천마을 (德泉洞)로 개칭하고 마을입구에 덕천마을 이란 표석을 설치했다.

안양 8동

명학동(鳴鶴洞)

주접동 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평산 신씨, 함평 이씨 등이 배판 했다고 전해진다.

예전에는 명학국교 아래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다가 1974년 서울-수원간 전철개통과 동시에 명학역의 건설, 1976년의 명학국교(위치 안 양8동 349-1), 중앙병원(위치 안양8동 산 160) 등이 들어서면서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다.

구전에 따르면 조선 인조 때 좌의정을 역임한 심기원(沈器遠1644)이 그의 부친 심간(沈諫)의 묘를 비산1동 수푸루지(林谷洞) 뒷산에 묘를 쓰려고 땅을 팠는데, 돌 밑에 학(鶴)이 두 마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 중에 한 마리는 양명고등학교 옆에 위치한 오미산(鳥尾山) 뒤로 날아갔고, 다른 한 마리는 안양경찰서와 명학국민학교 사이에 있는 바위에 날아와 앉더니 슬피 울고는 어디론가 날라갔다고 한다.

그 후부터 이 바위를 학이 울었던 바위라 하여 명학바위라 칭했고, 마을 이름도 바위 이름을 취해 명학동(鳴鶴洞) 이라 부른다고 한다.

참고:안양시지

골안(谷內洞)

주접동 서남쪽에 위치해 있다.

본래 주접동에 속한 마을이었으나 1962 년에 성결교신학교(안양동 산 1417-1),1971에 성문여중(안양동 산 117-1) 등이 설립되면서 급격한 인구의 증가로 주접동에서 분리되어 골안(谷內洞)으로 불리워지고 있다.

골안(谷內洞)이란 관모봉(성문여중 뒷산) 골짜기 안에 형성된 취락이란 뜻이다.

이곳엔 일찌기 전주 이씨와 여흥 민씨가 세거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참고:안양시지

상록마을(常綠洞)

안양8동 11통 지역으로, 골안 동쪽에 위치해 있다.

예전에는 야산으로 돌이 많았던 곳인데 푸른 숲으로 둘러쌓인 마을이라 하여 상록마을 (常綠洞)이라 칭했다고 한다.

1990년 10월 경부터 성도, 대신, 일진, 한진, 삼성빌라 등이 들어서면서 주택지로 변모되었다.

이곳은 수리산 삼림욕장의 시발지가되며, 지대가 높아 선풍기가 없어도 한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을 만큼 최적의 주택지로 손꼽힌다.

출처 안양시청

안양시 동별지명유래 만안구4 소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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