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시 동별지명유래 만안구5

안양시 동별지명유래 만안구5 소개

안녕하세요.
안양호빠입니다.

오늘은 안양호빠와 함께 만안구 안양9동의 새마을, 담배촌, 능골의 지명유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안양시 동별지명유래 만안구5

안양 9동

새마을

병목안 주민들이 농사를 지을 농경지로 처음에는 신부골(新富谷)로 불리워 오다가 1969년에 주택단지가 조성되면서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새마을로 개칭되었다.

시흥군 안양읍 당시 이곳에 안양 공설운동장 설치 계획을 세웠다가 협소하다 하여 신안양리 신촌(현 석수동 럭키아파트 자리)에 조성되었다.

1988년에 양지초등학교가 설립되었다.

참고:안양시지

담배촌

병목안 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안양9동 11통에 속해 있다.

이 마을은 하동 정씨를 비롯하여 금녕 김씨, 원주 변씨, 청주 한씨 등의 세거지로, 우리나라에서 두번째 신부인 최양업(崔良業1821-1861)의 아버지 최경환(崔京煥 1805.10.15-1839.9.12)을 비롯한 천주교도들이 조정의 천주교 박해로 인하여
1837년 7월 이곳에 정착 이주하면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하여 담배를 경작했다고 하여 담배촌 이라 칭한다.

담배촌은 급경사진 곳이 많아 담배는 주로 저지대의 경사가 완만한 곳에서 경작했는데, 일제강점기만 해도 한강 이남에서는
담배촌에서 재배한 담배를 일등품으로 칠만큼 품질이 우수했다고 전해진다.

예전에 담배촌 주민들은 담배 경작 외에 땔나무와 토종꿀을 채취해 이를 안산장(시흥시 수암동), 군포장(호계3동 구군포),
안양장(안양1동 시대동) 등에 팔아 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곳이 산간 오지의 마을이라 한국전쟁 때는 인민군의 본부가 주둔하기도 했고, 근래에는 병목안에서 담배촌에 이르는
골짜기마다 연중무휴 휴양객으로 붐빈다.

성지에는 복자(福者) 최경환의 묘가 있으며, 성지입구 못미처에 잇는 복자강당은 1977년 대홍수 직후 중건 되었다.

능골(陵谷)

현 안양서여자중학교(안양9동 1055-3) 뒷산이 흡사 陵의 활개같은 형상을 하고 있으므로 능골(陵谷)이라 칭한다.

일설에는 조선조 제21대 영조의 아들로, 속칭 뒤주대왕(사도세자)이 생전에 내가 죽으면 鳶을 띄워 떨어지는 곳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하며 연을 띄웠는데, 그 후 신하들이 연 떨어진 곳을 살피니 그 곳이 바로 능골이었다는 것인데,
그 후부터 능 후보지였다는 연유로 능골 (陵谷)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능골은 원주 변씨가 배판한 이래 채씨, 김씨등이 오랫동안 살아왔는데, 일제 강점기만 해도 불과 15호 남짓한 작은
촌락이었으나, 삼영하드보드 (안양3동774, 1946년 설립, 선창산업주식회사로 개칭), 삼진알미늄, 한국 아트제지 등
유수의 공장이 들어서자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였으며, 이어 안양서여자중학교, 신안국민학교(안양3동 730, 1977년에 설립),
신안중학교(안양3동 728, 1980년에 설립) 등 교육기관이 속속 들어섰다.

1986년에 는 삼진알미늄과 한국아트제지 자리에 프라자아파트가 신축되어 마을이 일신되었다.

보통 병목안을 웃능골이라 부르는데 반하여 이 마을을 일컬어 박능골이라 칭한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1979년 안양서여자중학교를 신축할 때 대리석으로 된 대형십자가가 출토된 것을 이 학교
화장실 부근에 묻었다고 한다.

참고:안양시지

출처 안양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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